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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각광 받았지만 지금은 외면 받는 설계 방식들

by 큰공룡 2026. 2. 10.

건축에도 분명한 유행이 있다. 어떤 시기에는 모두가 비슷한 외관의 건물을 짓고, 비슷한 평면을 꿈꾸며, 같은 단어들을 반복한다. ‘미니멀’, ‘개방감’, ‘자연 친화’, ‘호텔 같은 집’ 같은 표현들이 그것이다. 한때는 시대를 앞서간 설계로 평가받았던 방식들이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불편함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왜 그렇게한때 각광 받았지만 지금은 외면 받는 설계 방식들, 그 이유를 사람의 삶과 사용 경험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한때 각광 받았지만 지금은 외면 받는 설계 방식들
한때 각광 받았지만 지금은 외면 받는 설계 방식들

 

“예쁘다”는 말이 “살기 어렵다”로 바뀌는 순간

 

많은 건축 트렌드는 사진에서 시작된다. 잡지, SNS, 홍보 이미지 속 공간은 늘 완벽하다. 가구는 최소화되어 있고, 생활의 흔적은 제거되어 있으며, 빛은 언제나 이상적인 각도로 들어온다. 문제는 이 이미지가 실제 삶과 만나면서부터다.

대표적인 예가 과도한 미니멀리즘이다. 벽면 수납을 최소화하고, 노출 콘크리트나 단색 마감으로 공간을 비워두는 설계는 처음엔 세련돼 보인다. 하지만 생활이 시작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물건은 사라지지 않고, 수납은 부족해지며, 정리되지 않은 일상은 곧바로 공간의 결점으로 드러난다. 미니멀한 공간은 ‘정리된 삶’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 전제가 무너지면 불편함은 고스란히 거주자의 몫이 된다.

또 다른 예는 전면 유리와 개방형 평면이다. 시원한 개방감과 채광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사생활 보호와 냉난방 문제, 가구 배치의 어려움이 뒤따른다. 처음에는 트렌디한 선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은 깨닫는다. 집은 감상하는 공간이 아니라, 버티며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설계는 시대를 반영하지만, 삶은 변한다

 

건축 트렌드는 그 시대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한동안 각광받았던 오픈형 주방, 거실과 침실의 경계가 흐릿한 구조, 공용 공간 중심의 평면은 ‘소통’과 ‘개방’을 중시하던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있었다. 가족이 함께 머무는 시간이 많고, 집 안에서의 활동이 외부로 확장되던 시기에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삶의 방식이 바뀌면서 이 설계들은 점점 부담이 된다. 재택근무의 증가, 개인 공간에 대한 욕구, 소음과 프라이버시 문제는 기존 트렌드의 약점을 드러낸다. 거실과 주방이 완전히 열린 구조에서는 집중하기 어렵고, 냄새와 소리가 집 전체로 퍼진다. 한때는 장점이었던 요소가, 상황이 바뀌자 단점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또한 유행은 빠르게 소비되지만 건축은 오래 남는다는 점도 문제다. 옷이나 가구는 바꿀 수 있지만, 건물의 구조와 평면은 쉽게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유행을 그대로 따라간 건물일수록 시간이 지나면 더 빨리 낡아 보인다. 트렌드를 반영한 설계가 실패하는 이유는, 그 설계가 변화에 대응할 여지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살아남는 건 ‘덜 화려한 설계’다

 

흥미로운 점은 시간이 지나도 평가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 건물들의 공통점이다. 이들은 대체로 눈에 띄는 트렌드를 과하게 따르지 않는다. 대신 기본적인 동선, 적절한 수납, 자연스러운 채광과 환기처럼 아주 기본적인 요소에 충실하다.

예를 들어, 한때 촌스럽다고 여겨졌던 분리형 공간이나 여유 있는 복도는 다시 재평가받고 있다. 문 하나를 닫아 소음을 차단할 수 있고, 공간의 용도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삶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설계는 결국 오래 살아남는다.

유행했던 건축 트렌드가 사라지는 이유는 그것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 트렌드는 분명 그 시대에 필요한 답이었다. 다만 문제는, 건축이 유행처럼 소비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공간은 결국 외면받는다. 반대로 처음부터 삶의 불완전함을 전제로 설계된 공간은 유행이 지나도 여전히 편안하다.

 

건축에서 유행이 사라진다는 것은 실패라기보다, 검증의 과정에 가깝다. 수많은 시도 중에서 실제 삶을 견뎌낸 것만 남는다. 그래서 지금 외면받는 설계 방식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이 공간은 지금 예쁜가?”가 아니라, “이 공간에서 나는 오래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결국 건축의 가치는 유행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 속에서 증명된다.